1. 전라남도 장성군 여행 : 장성 소개!
전라남도 장성군은 42,233명(2024년 6월 기준)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백두대간 호남정맥의 서쪽 기맥인 노령과 병풍산 줄기가 병풍을 치고 있으며 영산강 유역에서 가장 유로가 긴 황룡강을 비롯하여 다양한 하천이 있습니다. 장성의 수계는 크게 4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수련산 능선을 기준으로 하여 동편 지역인 백암산, 입암산, 방장산, 축령산의 남쪽 계곡과 병풍산, 불태산의 북쪽 계곡의 물은 모두 황룡강이 흐릅니다. 100~300m 고도가 절반에 가깝고 300m 이상의 고지대는 10% 정도 되는데, 최고 고도는 822m인 병풍산입니다. 흥선대원군이 호남을 평하는 가운데 '호남팔불여'를 말하면서 '문불여장성'이라 하여 "학문으로는 장성만한 곳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전라남도 장성군은 학문과 선비의 고장답게 곳곳에 필암서원, 고산서원, 봉암서원 등 서원과 사우가 많습니다. 특히, 황룡면 필암리에 자리 잡은 필암서원은 호남 지방의 유종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장성 사람들의 꼿꼿한 기질과 은근한 자존심의 바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장성군의 군화는 백양난입니다. 성인군자가 가진 덕성과 품성의 고장을 상징하며 면학풍토 조성을 기치로 하여 군민들의 지, 덕, 체의 삼위일체가 통합된 이미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군목은 단풍나무입니다. 미래지향적인 개발의지 및 화합과 단결을 상징하는 고장을 상징합니다. 군조는 비둘기입니다. 힘찬 비둘기의 견고하고 탄탄한 도약을 기반으로 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고장을 상징하며, 군민들의 선량한 마음과 안정된 생활터전을 마련하는 이미지를 표방한 것이라고 합니다.
2. 황룡강, 아름다운 꽃의 경관
황룡강은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도 나주시를 거쳐 광주광역시를 지나는 하천입니다. 황룡강의 명칭 유래를 설명하자면,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황룡리에 큰 용이 살았는데 용소, 즉 용의 집이 있어 황룡마을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황룡마을은 고대 씨족사회나 부족사회 시대에 그 지역을 지휘통제하는 군장이 살았던 곳으로 마을 앞에 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장이 목욕하던 강이라 하여 황룡이 사는 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황룡강 유역에는 대도시가 발달하지 않아 오랫동안 비교적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고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뱀장어, 송어, 각시붕어, 피라미, 납자루 등이 서식하고 있고, 수생식물 군락이 발달해 물새들에게 또한 살기 좋은 환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인 삵, 새호리기, 흰 목물떼새, 수달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황룡강 주변에는 군민 또한 관광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잔디광장, 산책로, 축구장, 물놀이장, 배구장, 자연관찰하는 체험장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황룡강 길동무 꽃길 축제는 올해 2024년 5월 24일~26일에 진행했으며 '장성 황룡강 노란 꽃잔치'와 더불어 황룡강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 꽃 축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매년 5월에 황룡강변에서 붉은 꽃양귀비, 수레국화, 금영화, 해바라기 등 아름다운 꽃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경관이 정말 멋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성 황룡강 가을꽃축제'는 올해 2024년 10월 5일~13일에 실시할 예정이고 황룡강 일대에서 백일홍, 친일홍, 코스모스, 해바라기 등 100억 송이가 넘는 가을 꽃이 만개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축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공연 또한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개막일인 7일 1800시 축제 주무대인 옛 공설운동장에선 '개막 축하쇼 가요베스트'가 열립니다. 설운도, 조항조, 신유, 양지은 등의 출연진이 축제를 화려하게 장식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3. 필암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된 한국의 서원
필암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서원 47개소 중 한 곳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익히고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조선시대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기산리에 세워졌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진 적이 있으나 조선시대 인조 24년(1624)에 다시 복구를 했습니다. 조선시대 현종 3년 (1662)에 임금님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었고,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습니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 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하였으며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있고 북쪽에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마련해 두었습니다. 청절당의 처마 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 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습니다.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많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 초부터 전래된 것이고,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 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 데 사용된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필암서원은 1975년 사적 제242호로 지정받았고 2019년 7월 6일에는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받았습니다. 2019년 8월 19일 당시, 서원 안팎으로 유난히 사람들이 붐볐는데,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알리는 고유제가 열렸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영주 소수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안동 병산서원, 정읍 무성서원, 논산 돈암서원이 전라남도 장성군의 필암서원과 함께 등재되었다고 합니다.